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교회에서 벌어지는 인정투쟁과 게토화

교회에도 유의미한 글이라 공유. (페친이 쓴 글을 보면서 남겨본다)
교인들 간에 목사만 바라보며 인정투쟁 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목사로서 교인들을 게토화 시키는 것이, 따지고 보면 이런류의 인간의 종교적 속물 근성에 의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요가 수련하는 분을 몇번 만나 대화했다. 한마디로 사람이 참 맑고 맑았다. 일주일에 세번 요가원에 가서 수련을 한단다. 대화를 해보니 지도자를 제대로 만난 듯 하다. 그 이유는 그 지도자가 수련생을 엮어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필요하다. 소중하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 하지만 수련이나 영성을 추구하는 단체가 커뮤니티로 가게 되면 열에 아홉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변질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련하는 이들을 커뮤니티로 엮으면 거기에 온갖 지저분한 일들이 발생한다. 지도자가 어느 순간 교주적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거느리게 되거나, 약삭 빠른 인간들이 추종 그룹을 형성하여 자기 세력을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지도자와의 거리가 곧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계의 알력이나 인정투쟁이나 신비적 자기 과시들이 난무하게 된다. 특히 자신이 좀 더 영험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는 인간들이 설치게 되거나 무속적 주술적 감각을 지닌 이들이 맴버들을 집적거리기 마련이다.

 

나아가 회원들을 수련기간이나 체험이나 내공의 등급을 기준으로 단계화하고 서열화하게 되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통제를 하려는 관성이 발생한다. 지도자나 누군가가 그걸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구화되고 타자화된다. 그 속에서 교묘한 착취 구조가 발생하는 순간 그 집단은 사이비 혹은 사교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가장 큰 해악은 지도자가 왕이 되고, 사람들은 무리가 되는 것이다.

 

갖추어진 고등종교나 공익적인 조직의 경우에도 그런 일이 흔히 발생하는데, 파편화된 수련단체의 경우 결속력과 맴버십을 분명히 할수록 스스로 영토화되고 게토화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말랑하고 가벼운 결속의 수련 중심의 네트워크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가 홀로 서도록 돕고, 노련한 교사는 학생들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고 탐구하게 하도록 하는 자이다. 좋은 리더는 사람들을 거느리지 않는다. 자기 곁에 단단히 묶어두거나 이용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을 넘어서고 하산하기를 바란다. 때로는 스스로 떠난다. 떠남이 최후의 레슨이자 가장 강력한 선물이 됨을 안다.

 

오늘날 진리, 수련, 공부, 공익, 사랑과 우정, 교육, 커뮤니티 등등 온갖 고상한 이름으로 타자를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는 짓거리들이 얼마나 난무한가.

 

조직이나 관계성을 진단하는 온갖 측정기술이 있지만 사실은 딱 한가지만 보면 된다. 그 힘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는가? 단체의 에너지와 힘이 한사람이나 소수만을 향하면 못된 집단이자 위험한 집단이다. 반대로 사람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성장하게 하면서도 무한한 자유를 준다면 그나마 기본은 된 그룹이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벌들의 회사돈은 쌈짓돈?  (0) 2019.12.01
가짜뉴스의 진원지  (0) 2019.12.01
강남 클럽 아레나를 보면서  (0) 2019.12.01